요일제도의 기원과 일곱째 날 안식일(安息日)

요일제도,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중요한 모임과 약속이 날마다 이루어지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달력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혼란스러울까? 날짜와 요일을 일일이 계산해야 한다면 신속해야 할 일들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정확해야 할 일에도 착오가 많이 생길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약속하신 날이 몇째 날이며, 무슨 요일인지 정확히 알고 지켰을 때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특별하고 중요한 날들을 달력에 기록된 요일제도와 날짜를 통해 찾아보자.

요일제도 기원

먼저, 매주마다 시작되는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등의 이러한 요일 제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한 주일을 7일로 나눈 최초의 기록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심으로 7일 제도가 유래되었다. 그밖에 B.C. 7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람들이 매월 7, 14, 21, 28일에 쉬는 주 7일 제도를 시행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요일은 고대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에 의해 정해졌다. 그는 로마의 시저(Gaius Julius Caesar)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보완해 7일이 기본이 되는 주(週)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태양신의 날(Sunday)을 첫째 날로 정해 휴일로 선포하였다.

요일제도 명칭은 일곱 행성에서 유래

요일의 명칭은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개의 행성에서 따왔다. 이 일곱 개의 행성은 토성,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이다. 이 일곱 행성이 돌아가면서 매 시간을 관할하며 하루의 첫째 시(時)를 관할하는 행성이 그 날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점성가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믿었기에 그들이 생각한 별들의 운행은 오늘날과 순서가 좀 달랐다. 그들은 앞서 열거한 행성의 순서대로 지구와 가깝다고 생각했다. 지구에서 가장 먼 행성은 토성이며 가장 가까운 것은 달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곱 행성의 신(神)이 시간을 다스린다고 생각하였다.

요일제도 명칭은 일곱 행성에서 유래
고대인들은 행성들을 보며 시간과 요일의 이름을 정했다

예를 들면, ‘토성의 날’의 첫 시간은 토성의 신(神)이 다스린다고 생각하고 다음 시간은 순서에 따라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의 신(神)이 순서대로 다스린다고 생각하였고, 여덟 번째 시간에 다시 토성의 신, 목성의 신, 화성의 신, 태양의 신…. 이렇듯 일곱 별의 신들은 늘 교대로 각 날들을 차례로 주관하는 것으로 믿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요일의 한자 명칭인 ‘일월화수목금토(日, 月, 火, 水, 木, 金, 土)’는 동양사상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연관되어 있다. 일(日)과 월(月)은 각각 양(陽)과 음(陰)을 상징하는 태양과 달을 나타낸다.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그리고 흙(土)을 의미하는 오행(五行)의 명칭은 각각 화성(火星), 수성(水星), 목성(木星), 금성(金星) 그리고 토성(土星)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

일요일 휴업령

요일에 지금과 같은 명칭이 붙은 것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321년에 일요일 휴업령을 공표하면서부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달력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쓰고 있던 일주일을 도입했지만 요일의 이름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에 근간을 두었다. 태양신을 믿던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태양의 날’이라 불렀다.

이에 영향을 받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역시 첫째 날을 태양의 날로 선포하고 이 날을 예배일이자 공휴일로 정했다. 이어지는 둘째 날은 월요일, 셋째 날은 화요일, 넷째 날은 수요일, 다섯째 날은 목요일, 여섯째 날은 금요일,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정했다. 첫째 날(일요일)을 ‘태양의 날’이자 공휴일로 정한 것은 당시 로마인의 대다수를 차지한 미트라(태양신) 교도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일곱째 날, 즉 토요일을 예배일로 지켜오던 유대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대했지만 교회 지도자와 미트라 교도 등 대다수인들이 칙령에 지지해 결국에는 일요일이 휴일로 정착되었다.

제국 통합을 위한 정치적 장치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 휴업령은 사실 제국 통합을 위한 것이었다. 정치적 야욕이 컸던 그는 교세가 급속히 커가는 기독교와 로마의 신앙을 결합하는 어떤 정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로마의 공휴일이 되도록 지정하고 그 날을 예배의 날로 칙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예배는 폭 넓게 확대되어 발전할 수 있었고 교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다. 일요일 예배는 보다 큰 행사가 되었다.

핍박과 박해만 받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콘스탄티누스의 이러한 파격적인 정책은 표면적으로 기독교를 우대하고 옹호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사 초대편』은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세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기록했으며, 『두산백과』에는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기반을 넓히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최대한 장려하였다”고 기록했다. 또한 『교회사 핸드북』에는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 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 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이라고 명명했다” 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몇 가지의 증거만 보더라도 콘스탄티누스는 하나님을 믿는 순수한 신앙심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일요일 예배는 성경에 근간을 둔 것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을 시작으로 그 모습을 서서히 나타나게 된 하나의 정치적 방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요일제도 상 일곱째 날은 토요일

이후 기독교는 점점 많은 이방 사상과 상징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태양신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였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십자가와 같은 상징물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 변질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올바른 예배일인 안식일은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일곱째 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날이다. 이 날은 결코 변할 수 없는 날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소중한 날이다. 그렇다면 일곱째 날 안식일은 과연 무슨 요일일까? 요일제도의 기원과 일요일 휴업령의 역사를 보면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대 일곱째 날 안식일을 쉽게 찾아 지킬 수 있도록 달력의 요일제도를 통해 알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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