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폐지 후 주일로 대체? – 주일의 유래

안식일 폐지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키고 행한 안식일에 대한 기록이 잘 나타나 있으므로, 안식일은 초대교회의 가르침이 확실하다. 이처럼 안식일 예배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사도들이 존재할 때까지만 해도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자 진리는 차츰 변질되기 시작했다.

박해 받는 초대교회

로마는 기독교를 굉장히 싫어했다. 형상을 만들어 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것에 익숙한 로마인들에게는 아무 형상도 없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 그것도 유일신이라 하는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대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는 유대인들의 신앙에 적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신앙을 이유로 로마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반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달리 적극적으로 포교하는 부분도 로마인들의 반감을 사는 요소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 유대인들은 A.D. 66년에 한 번, A.D. 132년에 또 한 번 독립을 위해 로마와 싸웠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많지만 어쨌든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유대인이 두 차례의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로 인해 로마는 유대인을 박해하는 정책을 펼치기에 이르는데 , 문제는 기독교인들이었다. 가뜩이나 유대인과 비슷해 보여서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 그 유대인들이 반란으로 인해 박해를 받자, 가만히 있던 기독교인들에게까지 박해의 마수가 뻗친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억울하지만 감내해야 할 고난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박해를 피하려 진리를 버리다

로마제국은 십자가 처형도 부족해 시체를 개밥으로 주거나 기름틀에 넣는 등 끔찍한 처형 방법들을 자행했다. 시리아의 바위산부터 로마시 근교의 지하 무덤에 이르기까지 중다한 기독교 유적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감내해야 했던 참혹한 박해의 현장을 증언해 주고 있다.

로마제국은 유대교와 동일하게 유일신을 섬기고, 유대교와 동일한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를 구분하지 못했다. 해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켰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로마교회의 신자들은 새 언약의 안식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박해의 요인을 줄이기 위해 기독교와 유대교는 다른 종교임을 피력하였다. 그것이 바로 2세기경부터 안식일 대신에 드려지기 시작한 일요일 예배다

로마의 한 카타콤 유적지
로마의 한 카타콤 유적지.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모여 신앙을 지켰다

왜 하필 일요일인가?

안식일을 버리고 선택한 일요일 예배는 로마인들이 숭배하는 미트라교의 의식이다. 미트라(Mithra), ‘메흐르’라고도 불리는 이 신은 태양과 빛, 약속의 신이다. 미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집인 아베스타에 따르면 어둠과 악의 힘에 대항하여 하늘의 빛과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라고 한다. 이 태양의 신인 미트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아리안족의 숭배를 받았다. 특히 아케메네스 제국의 통치 시절에 세워진 많은 비석에서 ‘메흐르’라는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미트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것이 미트라가 제국 내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졌었는지 보여주는 좋은 자료라고 분석한다.

좌우지간 많은 교회들이 안식일 폐지 후 일요일 예배를 수용하고 지키게 되었다. 로마의 핍박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결국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진리를 버린 것이다

안식일 폐지 vs 일요일 예배 불가

안식일 폐지 역사가 일어났던 2세기경에 많은 교회가 일요일 예배를 받아들였지만 모든 교회가 일요일 예배를 수용한 것은 아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2세기부터 미트라교의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 예배를 받아들였지만 동방교회들은 321년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질 때까지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 예배의 시기로는 주(週)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
교회사, 송낙원, 1981, 이건사, 101쪽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 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일요일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교회사, 김의환 감수, 1992, 세종문화사, 145쪽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중시했던 동방교회는 토요일 안식일을 고수하며 믿음을 지켜나갔던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 통해 기어이 안식일 폐지

하지만 동방교회도 일요일 휴업령과 밀라노 칙령을 통해 결국 안식일을 잃어버리게 된다

밀라노 칙령

밀라노 칙령은 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에서 발표한 칙령(勅令)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여, 이전까지 로마제국에서 핍박의 대상이었던 기독교가 보호와 장려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발표한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기독교는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박해의 시대를 종식하고 기독교를 공인하는 정책을 펼친 것이다.

콘트탄티누스
콘스탄티누스 1세, 그는 정말 기독교인이었을까?

그런데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은 정말 순수하게 기독교를 옹호하고자 했던 정책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그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제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종교로 기독교를 택한 것이지 근본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박해의 시대는 끝나고 기독교에 대한 수많은 혜택이 주어졌지만 이러한 상황은 도리어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겼다

기독교인 콘스탄티누스?

또한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하나 더 있다. 그는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신은 불멸의 태양신이었고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태양신의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직함이다. 죄 사함의 축복을 악용하고자 죽기 직전까지 침례를 받지 않았던 그의 행보를 보더라도 기독교를 진심으로 믿었는지 심히 의심스럽기만 하다.

콘스탄티누스(콘스탄티누스 1세)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로마 종교계의 최고위직)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10년 동안 그의 화폐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신(神)으로 보여지는 불멸의 태양이라는 이방신의 상징이 나타나 있었다… 콘스탄티누스가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콘스탄티누스는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
교회사 핸드북, 라이온사 편, 송광택 역, 1991, 생명의 말씀사, 130-131쪽

콘스탄티누스는 다스려 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인을 지지하였고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세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우리가 결론을 지을 수 있다
교회사(초대편), J.W.C 완드 저, 이장식 역, 2000, 대한기독교서회, 192쪽

이처럼 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지 결코 기독교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일요일 휴업령

콘스탄티누스의 종교적 정책은 계속 이어졌다.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교회를 세속화시키더니 321년에는 “존엄한 태양의 날에는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쉬어야 한다”며 일요일 휴업령까지 내렸다. 종교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던 콘스탄티누스는 일찍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었던 서방교회와 일요일을 신성시 하는 태양신교의 융합을 꿈꾸는 정책으로 일요일 휴업령을 선포한 것이다. 실제로 이 날은 기독교적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존엄한 태양의 날’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는데, 태양신을 본래 숭배하던 이교도들은 자연스럽게 교회에 들어와 태양신을 숭배할 수 있게 된 셈이니 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리가 없었다.

일요일 휴업령으로 인해 로마교회의 입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321년 이전에는 로마교회와 일부 교회만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켰지만 일요일 휴업령이 선포된 이후에는 황제의 권위로 제국의 모든 신민이 일요일에 강제 휴일을 맞이하게 되었고 동방의 교회들마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일요일 예배가 예배일로 확립되었고 안식일 폐지를 지키고자 하는 자들은 사막과 산중으로 쫓겨 다니는 비참한 삶을 강요당해야 했다.

안식일 폐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제정된 거룩한 날이며, 안식일 폐지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유대인들이 핍박에서 벗어나고자 일요일 예배를 택하고 안식일을 버릴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은 폐지될 수 없다. 안식일은 세상 끝날까지 지켜야 하는 규례다(마태복음 24:20~21).

더 이상 안식일 폐지의 역사는 없어야 한다. 마지막까지 안식일은 존재할 규례이며 안식일을 지키는 자가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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